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우라 에이지 (문단 편집) == 경력 == 영화인을 목표로 했으나 당시 TV의 보급으로 영화 업계가 무너져 [[무시 프로덕션]]에 [[촬영]]으로 입사했다. 촬영보다는 업무 수행력이 좋아 비서로 승격 되었는데 무시 프로덕션의 경영이 개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시 프로덕션은 당시 [[애니메이터]]를 정직원으로 고용하고 고정급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일을 대충해도 월급이 나오니 직원들이 실력이 있는데도 일을 대충하거나 부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능력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아첨으로 승진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야마우라는 이를 보고 "인간은 믿을 수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무시 프로덕션이 조만간 망할 거라고 확신해 무시 프로덕션의 재능있는 인력을 포섭하면서 독립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다만 무시 프로덕션 1군은 [[마루야마 마사오(1941)|마루야마 마사오]]가 [[매드하우스]]로 빼가서 2군만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윽고 무시 프로덕션을 그만두고 소에이샤(훗날의 [[선라이즈(브랜드)|선라이즈]])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원래는 좀 돕다가 나가서 촬영 하청사를 차리려고 했는데 그가 기획한 [[우주삼총사|제로 테스터]], [[용자 라이딘]]이 히트하면서 선라이즈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선라이즈의 창업자가 7명이었는데 [* 그래서 선라이즈에서는 이 7명을 [[7인의 사무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기획을 하겠다는 사람이 1명도 없어서 자신이 했다고 한다. 야마우라는 무시 프로덕션의 경영을 [[반면교사]]하여 연출가와 애니메이터를 전원 [[프리랜서]]로 고용하고 모든 수당을 실적에 맞춰 지급해 근무 태만을 막고 경영은 경영 전문가에게 맡길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 선라이즈가 최초로 한 것은 아니고 이러한 방식은 [[월트 디즈니]]가 시작한 것이었으며 당시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사내 애니메이터와 별개로 프리랜서 애니메이터를 이런 식으로 굴렸다.] 물론 야마우라 혼자 정한 건 아니고 선라이즈 창업자 7명이 전원 같은 생각이었다고 한다. [[코즈마 신사쿠]]는 이를 두고 [[토에이 애니메이션]]과 선라이즈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저임금의 근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라이즈에 실적제를 도입해서 악덕 기업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은 굉장히 좋고 말도 잘해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따뜻한 성격이었지만 공과 사는 확실히 구별해서 일할 때는 굉장히 차가워지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실력있는 사람에게는 돈도 많이 챙겨주었다고 한다. [[우에다 마스오]]에 따르면 정말 대단한 프로듀서이며 1970 ~ 1980년대의 선라이즈의 실질적인 리더와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기획을 주로 했지만 [[기동전사 건담]]은 프로듀서 시부에 야스오(渋江靖夫)가 [[더★울트라맨]]을 만들겠다고 중간에 나가서 야마우라가 실질적인 현장 프로듀서를 했다고 한다. 기동전사 건담 성공의 주역으로 꼽히기도 한다. 히트를 위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냈으며 본방 당시 시청률이 낮을 때도 이 작품은 언젠가 반드시 인정받을 것이며 망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토미노가 건담을 3부작 극장판으로 다시 만들고 싶다고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도 흔쾌히 통과시켰다고 한다. 다만 [[건프라]]의 성공은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퍼스트 건담은 완성된 작품이라 생각해 후배 [[우에다 마스오]]와 함께 이 작품은 속편을 내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서 결국 [[기동전사 Z건담]]을 내고 시리즈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1987년 선라이즈의 3대 사장으로 취임하고 프로듀서 작품을 줄이게 된다. 그러다 선라이즈가 [[반다이]]에 먹히면서 야마우라 에이지는 활동에 곤란함을 겪었고 1993년 [[기동전사 V건담]] 제작 중에 사장에서 물러나 선라이즈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타카마츠 신지]] 등 여러 크리에이터는 "이때부터 선라이즈는 선라이즈가 아니게 되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러난 뒤로도 여전히 뒤에서 아이디어는 종종 제공했다고 한다. [[모빌슈트 건담 디 오리진]]도 야마우라의 제안으로 나왔다고 한다. 2010년에 사망했다. 급사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